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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트리 4.0에 대한 정의, 최신 동향, 추진 현황, 발전 전망을 다룬 시리즈 기사

 

 

 

<목차>

 

 

1부 - 개요

http://www.zdnet.co.kr/view/?no=20190902135449

 

 

2부 - 인더스트리 4.0 비전 2030

http://www.zdnet.co.kr/view/?no=20190917090713

 

 

3부 - 인더스트리 4.0 추진 연혁 및 조직

http://www.zdnet.co.kr/view/?no=20190925070515

 

 

4부 - 인더스트리 4.0 정의 및 양면전략

http://www.zdnet.co.kr/view/?no=20191002141155

 

 

5부 - 개인 맞춤형 제품 동향

http://www.zdnet.co.kr/view/?no=20191010173531

 

 

6부 - 개인 맞춤형 제품 시장 동향 및 공급기업 대응방안 (이의훈)

http://www.zdnet.co.kr/view/?no=20191015120044

 

 

7부 - CPS 기반 스마트 팩토리

http://www.zdnet.co.kr/view/?no=20191023141109

 

 

8부 - 스마트 팩토리 Bosch 사례

http://www.zdnet.co.kr/view/?no=20191031030926

 

9부 - 스마트 제조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

http://www.zdnet.co.kr/view/?no=20191106125411

 

 

10부 - 경험경제 시대 : 제품과 서비스 융합으로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

http://www.zdnet.co.kr/view/?no=20191113100120

 

11부 - 인더스트리 4.0 애플리케이션 시나리오

http://www.zdnet.co.kr/view/?no=20191121165618

 

12부 -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

http://www.zdnet.co.kr/view/?no=20191126130918

 

13부 - 인더스트리 4.0 유스케이스 및 테스트 센터

http://www.zdnet.co.kr/view/?no=20191205123706

 

14부 - 데이터 공유 및 시스템 연동 기반 생태계 전략

http://www.zdnet.co.kr/view/?no=20191213123737

 

15부 - 인더스트리 4.0 구현을 위한 국제표준 RAMI 4.0

http://www.zdnet.co.kr/view/?no=20191219093547

 

16부 - 인더스트리 4.0에서 디지털 트윈 구현을 위한 AAS

http://www.zdnet.co.kr/view/?no=20191227090925

 

17부 - 스마트 제조 보안

http://www.zdnet.co.kr/view/?no=20200103105547

 

18부 -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

http://www.zdnet.co.kr/view/?no=20200109094659

 

19부 - 인더스트리 4.0을 위한 인사조직 4.0

http://www.zdnet.co.kr/view/?no=20200116084146

 

20부 - 인더스트리 4.0 인재 양성을 위한 Qualification 4.0 가이드라인

http://www.zdnet.co.kr/view/?no=20200122152800

 

21부 - Festo의 Qualification 4.0 교육 프로그램 사례

http://www.zdnet.co.kr/view/?no=20200204130148

 

22부 -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기업교육 모델과 시사점

http://www.zdnet.co.kr/view/?no=20200206092045

 

23부 - 독일의 노동 4.0과 직업교육

http://www.zdnet.co.kr/view/?no=20200213095640

 

24부 -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의 사업장 지도

http://www.zdnet.co.kr/view/?no=20200221165102

 

25부 - 노동 4.0과 사회적 혁신

http://www.zdnet.co.kr/view/?no=20200226224728

 

 

 

 

 




 미국 교환학생 파견 시 요구받는 건강검진은 미국 대사관이 아닌 파견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이므로, 미국 비자와는 상관이 없고 건강검진표 역시 파견 학교에 제출하게 됩니다. 


 미국 애슐랜드 대학의 경우 입학 허가서에 'Medical Form'이라고 써 있는 서류 묶음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페이지는 본인이 직접 작성해도 되지만, 두 번째 페이지는 의사 면허를 소지한 사람이 직접 검진하고 검진표를 작성한 뒤 싸인 또는 도장까지 해야 합니다. 즉,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강 검진을 완료하지 않고 애슐랜드 대학에 도착하게 되면 30달러를 내고 학교에서 검진을 받게 되는데요, 경험상 해외에서 받는 건강 검진은 우리나라에서 받는 것보다 더 깐깐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을 상대로 검진하는 것이라 사소한 것에도 트집을 잡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서 저는 한국에서 건강 검진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선릉역에 있는 하나로의료재단(강남 하나로의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병원의 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아도 무방하나, 유학 검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으로 가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타 블로그 후기를 보니 동네 병원에서는 검진을 거부하기도 했다고도 해서요..

 

 유학 검진을 받기 위해서는 여권과 예방접종 기록표, 그리고 학교에서 준 건강검진표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병원 홈페이지에 써 있습니다. 예방접종 기록의 경우 2000년 이전 전산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이런 경우에는 아기 수첩을 들고 가셔도 됩니다. 저는 집에 아기수첩이 없어서 그냥 부모님이 직접 기록한 소아건강수첩을 들고 갔습니다.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 전산 기록된 예방접종 기록은 병원에서 조회하기 때문에 따로 인쇄해서 가져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 2000년 이후에 예방 접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산 기록을 안 한 병원이 있는데, 이런 경우 해당 병원에 연락하셔서 전산 기록을 해 달라고 요청하시면 바로 해 주실 겁니다. 병원이 폐업한 경우에는 지역 보건소에 연락하시면 됩니다.)


 강남 하나로의원은 선릉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쭉 걷다보면 나옵니다. 7층으로 올라가셔서 창구에다가 유학 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거기서 여권과 건강검진표를 제출하게 되는데요, 원래 두 번째 페이지만 내도 되지만 저는 혹시 몰라서 모든 페이지를 다 제출했습니다. 검진표가 전문 용어가 가득한 영어로 되어 있다보니.. 제가 혼자 작성했다간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다른 페이지까지 병원에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9층에 올라가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 및 문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의사 선생님이 저보다 medical form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계시더라고요.. 결핵 검사는 학교에서 받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파상풍 백신(TD)이 10년 유효기간이 지나서 다시 맞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파상풍 예방주사의 경우 예외적으로 어렸을 때 맞고 끝이 아니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필요시 다시 맞아야 됩니다.)   


 그 뒤에 기초 검진과 파상풍 예방 주사 맞고 끝났습니다. 총 비용은 9만 원이 들었네요. 제출비? 30,000원에 기초검진비 10,000원, 그리고 주사 비용 50,0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진 결과는 일 주일 이후에 나오고, 검진 결과 받으러 또 병원에 방문하셔야 합니다. 검진 결과를 받아 보니 두 번째 페이지가 아닌 곳까지 작성해 주셨고, 예방 접종 기록도 전산에 없는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제 출생일에 맞춰서 그냥 적어주셨습니다. 애슐랜드 대학의 경우 예방 접종 기록은 학생이 직접 적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방 접종 기록이 전산에 없고 아기 수첩까지 분실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기 수첩이 없을 때에는 예방접종을 한 병원에 전화하셔서 예방접종 기록을 전산화 해 달라고 요청하셔야 하는데, 큰 병원이라고 해도 옛날 기록은 전산화 하지 않고 파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ㅠ.. 만약 확실한 예방 접종 기록을 요구하는 학교라면 예방 접종 기록이 없을 때에는 항체 검사를 하거나 예방 접종을 아예 다시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검진 결과를 받고 나면 병원에서 채우지 않은 다른 부분을 보충 작성해 주시면 끝입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글임을 참고 바랍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 합격 후 파견교에서 요구하는 온라인 지원 절차를 완료하게 되면, 11월쯤 입학 허가서를 본교로 전송한다는 이메일을 파견교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입학 허가서를 받으면 비자 발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입학 허가서를 직접 받고 나서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인터뷰 날짜를 미리미리 잡기가 힘듭니다. 조금만 늦게 신청해도 출국 며칠 전에 아주 촉박하게 인터뷰를 하게 되거나 아예 출국 전에는 예약 자리가 다 차 있어서 긴급 인터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학 허가서를 직접 받고 나서가 아닌 입학 허가서를 전송하겠다는 이메일을 받고 나서 비자를 신청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메일을 받고 나면 약 일 주일 후 입학 허가서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은 미국 교환학생 비자 발급 절차입니다.



 1. 여권 발급 및 미국비자 사진 촬영 (미리 해 두어야 함)


여권의 만료기간이 넉넉히 남아있는지 확인하세요 (최소 6개월 이상). 미국비자 사진은 사진관에 말하면 찍어주실 겁니다. DS-160 작성 시 비자 사진 업로드가 필요하므로 사진관에 사진 파일을 메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2. 미국 비자 신청 수수료 지불 ($160)


  1) 인터넷뱅킹을 통해 지불하는 경우 (신청 후 약 2시간 뒤 비자 인터뷰 신청 가능)

http://www.ustraveldocs.com/kr_kr/kr-niv-eft160.asp

 위 링크에 입금 계좌번호가 찍혀 있을 겁니다. 이 화면을 먼저 캡쳐하세요. 캡쳐를 먼저 하기를 권하는 이유는, 이 계좌 번호는 가상 계좌번호이고 새로고침을 하게 되면 여러분이 송금했던 계좌번호가 뜨는 화면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인터뷰를 예약하기 전까지는 수수료를 입금한 계좌번호를 알고 있으셔야 합니다. 송금 뒤에는 송금한 내역도 프린트하셔야 합니다 (영수증으로 활용).


 2) 씨티은행에 직접 방문하여 송금하는 경우 (약 4~8시간 뒤 인터뷰 신청 가능)

http://www.ustraveldocs.com/kr_kr/kr-niv-paymentinfo.asp#cash

위 링크에서 화면 하단의 J비자에 해당하는 '$160' 링크를 클릭하시면 납부 신청서 pdf 파일이 뜹니다. 이것을 인쇄해서 씨티은행에 방문하시고 현금으로 납부하시면 됩니다. 송금 뒤에 받게 되는 납부 영수증은 분실되어도 재발행이 되지 않으니 꼭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분실된 상태에서 입금 거래번호도 모르게 되면 비자 인터뷰 예약이 불가능하며, 결국은 비자 수수료를 다시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ㅠㅠ


* 납부 영수증을 인터뷰 시 가져가야 한다는 내용의 타 블로그 게시물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하러 대사관에 방문했을 때에는 영수증을 따로 제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굳이 가져가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3. DS-160 작성 https://ceac.state.gov/genniv/


 비자 신청 수수료 납부 뒤 생기는 대기 시간을 이용하여 작성하시면 되겠습니다. 적을 내용이 꽤 많습니다. 


1) DS-160 작성을 시작했을 때 받게 되는 신청서 번호는 꼭 메모해 두시길 바랍니다! 적은 내용을 수정하거나 할 때 사용되는 번호니까요.

2) 본인의 인적사항과 집 주소, 파견 학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문항이 자주 나오므로 신청서 쓸 때 미리 적어놓으시면 편합니다. (주소는 영문 주소이고, 전화번호 입력할 때는 맨 앞에 국가 번호도 같이 입력하세요.)

3) DS-160을 대사관에 제출하고나서부터는 수정이 불가능하니 제출 전 틀리게 쓴 답변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세요! 틀리게 적으면 거짓 진술이 돼 버려서 꽤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4) 제출 뒤에 제공되는 확인 페이지(Confirmation Page)를 인쇄하여 인터뷰 시 제출하셔야 합니다. 바코드가 선명하게 인쇄되도록 하셔야 합니다.



 4. SEVIS Fee 납부 ($180) https://www.fmjfee.com/i901fee/index.html


 911 테러 이후 보안 강화를 위해 당국에서 미국에 오는 유학생들의 신원을 관리하게 됐는데, 그에 대한 관리 비용입니다.

 위 링크를 타고 들어갔을 때 화면 상단에 있는 'Pay I-901 Fee' 버튼을 누르시고 수수료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Sevis Fee는 비자 카드나 마스터 카드로 결제 가능합니다. 이 때 SEVIS ID와 program number 기입이 필요한데, 미국 애슐랜드 대학의 경우 SEVIS ID를 입학 허가서를 보내겠다는 메일을 보낼 때 알려주었는데, Program number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파견교 교환학생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서 program number를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실 겁니다.

 납부 후에 받게 되는 영수증도 프린트해서 인터뷰 시 제출하여야 합니다.



 5. 인터뷰 예약 http://www.ustraveldocs.com/kr_kr/kr-niv-appointmentschedule.asp


 위 링크 화면 화단의 '인터뷰 예약하기' 누르시면 됩니다. 계정을 새로 만들고, 홈페이지에서 요구하는 정보들을 다 채우시면 인터뷰 예약이 가능합니다. (이 때 비자 신청 납부 완료 후 받은 거래 번호와 DS-160 작성 시 얻은 신청서 번호를 적어야 합니다!)

 인터뷰 예약 뒤에 받게 되는 인터뷰 예약 확인서도 인쇄하셔서 대사관 방문 시 제출하셔야 합니다.


 ※ 늦게 신청해서 인터뷰 가능 날짜가 많이 늦어진 경우에는, 일단 제일 빠른 날짜로 예약을 하신 다음 수시로 예약 변경 페이지에 들어가셔서 더 빠른 날짜에 예약 자리가 비었는지 확인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예약 날짜 변경은 2번까지 가능하며, 횟수를 초과하게 되면 인터뷰 예약을 처음부터 아예 다시 하셔야 합니다.

 긴급 인터뷰의 경우 비자 거절을 받은 적이 없고, 학기 시작을 2주 내로 앞두고 있는데 인터뷰 가능 날짜가 단 하루도 없을 때 신청서를 영어로 작성해서 승인이 나야 가능합니다.  

(긴급 인터뷰 예약에 대한 안내 페이지: http://www.ustraveldocs.com/kr_kr/kr-niv-expeditedappointment.asp)



6. 구비 서류 준비


 인터뷰를 위해 대사관에 방문할 때 필수로 구비해야 하는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효기간이 충분히 남은 여권

  2) 미국 비자 사진 1매 이상

  3) 인터뷰 예약 확인서

  4) SEVIS Fee 납부 영수증

  5) DS-160 확인 페이지

  6) DS-2019 (파견교로부터 이 문서가 도착했을 때 파란색 펜으로 파견교 담당 교직원 싸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페이지 맨 하단에 Signiture of Applicant / Place / Date(mm-dd-yyyy) 라고 되어있는 부분은 본인이 검은색 펜으로 서명을 해야 합니다. Place는 비자신청 지역인 Seoul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 집에 프린트기가 없어 확인 페이지나 납부 영수증을 받은 즉시 인쇄가 불가능한 경우, 확인 페이지나 납부 영수증을 이메일로 보내는 버튼이 있으니 그걸 활용하시면 됩니다. DS-160의 경우 신청서 수정할 때처럼 신청서 번호와 인적사항 입력하고 들어가시면 어디서든 확인 페이지를 띄우실 수 있습니다. (수정이 안 된다면서 확인 페이지를 보여줄 겁니다.)


 다음은 보조 서류입니다. 저는 인터뷰 때 전혀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가져가시는 것을 권합니다.

  1) 비자신청 수수료 납부 영수증

  2) 영문 잔고증명서와 국문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는 영문 발행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영문 재학증명서와 성적증명서

  4) 토플 성적표

  5) 입학 허가서



 7. 인터뷰 후기


 저는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대사관에 도착했습니다. 미국대사관은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입니다. 비자 발급을 위해 왔을 때는 미국 대사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문을 마주 봤을 때 건물의 오른쪽에 있는 초록 지붕이 보이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사관에 들어갈 때에는 휴대폰 1대와 자동차 키 말고는 전자기기 보관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노트북 등을 가지고 오신 분은 광화문역 안에 있는 사물함에 물건을 맡기고 대사관에 가셔야 합니다.

 가면 사람들이 줄을 엄청 서 있을텐데, 어차피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면 담당 직원이 나와서 지금 시간으로 예약한 사람은 앞에 가서 줄을 서 있으라고 할 겁니다. 대사관 창구 앞에 가게 되면 여권과 인터뷰 예약 확인서를 제출하게 되고, 대사관에 입장하게 되면 휴대폰 전원을 꺼서 대사관 직원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제출 뒤에는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되는데요, 서류 요구하는 직원 있으면 내고, 지시 사항에 따르면 됩니다. 지문을 찍고 나면 인터뷰 줄을 기다리게 됩니다.


 제가 인터뷰를 했을 때 받은 질문은 미국 어디로 가는지(파견가는 학교명을 물어보는 것), 미국에 가서 얼마동안 머물 것인지, 교환학생 신분으로 가는 것이 맞는지가 전부였습니다. 교환학생의 경우 신분이 보장되어 있어 기본적인 질문만 몇 개 물어보고 끝나니 인터뷰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타 블로그에 올라온 인터뷰 후기를 보면 재정 지원은 누가 해 주는지, 만약 부모님이면 직업이 뭔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됩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지문을 다시 한 번 더 찍게 되고, 비자 승인 시 여권은 돌려받지 않게 됩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나가셔서 보관한 휴대폰 다시 받고 가시면 됩니다. 대사관 도착부터 인터뷰 완료까지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보통 여권을 제출하고 3일 정도 뒤에 택배로 여권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요. 저는 인터뷰를 오전에 했고 중간에 주말이 끼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인터뷰 다음날 오후에 집으로 여권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 1학기 파견 교환학생에 합격한 명지대학교 학생입니다. 저는 교환학생 지원 과정에서 정보가 없어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 여러분 만큼은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말라고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이후에도 비자 취득 과정, 교환학생 생활 등 여러 정보를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교환학생 지원 과정입니다. 


※ 아래 내용은 2019년 1학기 지원 당시 내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여러분이 교환학생 지원을 할 때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어학 성적 취득 (토플, JLPT 등)


 교환학생 지원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셨다면, 먼저 국제교류원 홈페이지에 가서 예전 교환학생 선발 공고에 붙은 첨부파일을 보셔야 합니다. 명지대학교가 교환학생을 어느 나라의 어느 학교로 보내는 지도 알 수 있고, 학교마다 요구하는 어학 성적 기준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어학 성적 없이 교양 영어과목 점수로도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생각한 때만 하더라도 미국 대학의 경우 토플iBT 80점 이상, 유럽 대학의 경우 60~90점 정도의 점수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대학은 JLPT 점수를 요구하고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2학년 과정을 마치고 한 학기 휴학을 하면서 토플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이 원래 영어를 잘 하셨던 게 아니라면, 토플을 토익처럼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시험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80점 정도를 만드는 데에도 최소 3개월은 걸리는데, 거의 매일 하루종일 공부해서 3개월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토플 점수를 만드시려면 휴학은 거의 필수예요.. 그리고 정말 어려운 시험입니다.

 이렇게 부담이 커서인지 요즘에는 토플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학교가 많은 듯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시면 여러분은 교환학생을 가서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 하고, 심지어는 발표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토플은 영어권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보는 시험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교환학생 지원 시 어학점수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교양 영어과목 성적으로만 지원한 학생보다 교환학생 선발에 더 유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학점수 취득 과정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휴학도 감수할 수 있다면, 어학성적을 가지고 계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2. 지원서 작성 및 서류 제출


 여러분이 교환학생 지원을 하고 합격하시게 되면, 그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1학기에 파견 나가는 경우에는 8월 초에, 그리고 2학기에 파견 나가는 경우는 2월 초에 국제교류원 홈페이지에 교환학생 모집 공고가 뜨게 될 것입니다. 공고에 나온 내용을 꼼꼼히 보시고, 요구하는 서류를 정해진 기간 내 국제교류원에 직접 제출하시면 됩니다. 공고를 보면 지원 서류 작성 도움을 위한 튜터링 세션을 제공하는 날이 적혀 있는데, 그거 참여하시면 좋습니다! 지원서 작성과 면접 모두 1지망 대학을 기준으로 작성하고 준비하시면 됩니다.



 1) 자기소개서 및 수학계획서


 서류 심사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이 학생이 교환학생에 가서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학생에 지원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고, 가서 무엇을 공부하고자 하는지 잘 적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서 무엇을 공부할지에 대한 설명이 꼭 전공과 연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 홍보계획서


 어찌 보면 작성하는 데 꽤 시간이 드는 항목입니다. 명지대학교를 파견 학교의 현지 학생들에게 홍보하는 방안을 몇 페이지 분량으로 써야 합니다. 이 홍보계획서 항목이 서류 심사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적는 것이 좋겠지요? 명지대학교에 대해 알리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알리겠다는 방안도 좋고, 명지대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것이 명지대학교의 장점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분량이 어느 정도 나올 것입니다.



3. 서류 심사 통과 후 면접


 아마 국제교류원에서 언제 면접 공고가 뜨는지 대강의 날짜를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 때쯤 되면 국제교류원 홈페이지를 매일 방문하면서 면접 공고를 기다리세요. 면접 학생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면 문서에 적혀있는 날짜와 장소에 면접보러 가시면 됩니다.

 영어 면접 등 외국어 면접이 포함되어 있고, 면접 점수가 교환학생 선발 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 면접은 학생을 떨어뜨리려고 보는 면접이 아니라, 교환학생에 지원한 학생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면접을 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압박 면접을 하거나 하지도 않고, 분위기도 너무 딱딱하지 않으니 겁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영어를 엄청 잘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어려워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영어회화 교재와 전화영어로 영어 스피킹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영어회화 공부법에 대한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http://schatten4.tistory.com/41?category=763732)

그리고 네이버에 "교환학생 면접 질문" 검색해 보시면 면접 질문 리스트가 잘 쓰여 있는 포스팅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보시고 영어로 답변을 써 본다음 그것을 외워서 준비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면접을 봤을 때의 면접 질문입니다. 교환학생 면접은 면접보는 교수님에 따라 모두 영어로 진행할 수도, 영어와 한국어 면접을 병행할 수도, 아니면 아예 한국어 면접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면접을 봤을 때는 모두 영어로 대답해야 했습니다. 영어로 답변을 준비해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자기소개, 교환학생을 지원한 이유 (공통 질문)

 2. 1지망 대학에 본인의 전공이 없는데, 가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개별 질문)

 3. 교환학생 생활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공통 질문)

 4. 1지망으로 지원한 대학이 현재 경쟁률이 세다. 이 대학에 선발되지 못할 경우 2, 3지망 대학에 갈 것인지?


 다른 학우분의 면접 후기를 보니 2지망 대학을 지원한 이유도 물어봤다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어권 대학에 가지 않는 경우, 그 나라 말을 해 보라고 했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반한 감정이나 외국인 혐오가 심한 지역에 가는 경우에는 이 질문 또한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원 대학을 5지망까지 모두 썼다면 웬만해서는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는 특정 국가의 대학이나 특정 학교만 지원하느라 지원 대학을 1, 2지망까지 밖에 안 쓴 경우라고 합니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차선책으로 갈 대학이 없어서 떨어지는 거지요.

 교환학생 지원 시 심사 기준이 되는 학점, 어학 성적, 면접 점수 등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교환학생 지원 시 고려사항


 - 교환학생에 갔다 오면 아무래도 졸업이 늦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학 성적 취득을 위해 휴학을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파견 학교에서 전공 수업을 듣고 와도 전공 학점 인정이 잘 안됩니다. 그리고 전공 학점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학교에서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수업을 듣기 때문에 전공 과목을 많이 듣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실제로도 수강신청 할 때 전공 과목은 1, 2개만 듣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기간만큼 졸업이 또 늦어지게 됩니다. 그 동안 전공 학점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으니까요. 한 학기 파견 갔으면 졸업이 한 학기 늦어지고, 일 년 파견갔으면 일 년 늦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 어느 나라로 교환학생을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서 생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할 때 들었던 비용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가는 대학만 하더라도 한 학기 기숙사 비용이 식권 포함해서 한화 약 500만원 정도가 듭니다. 또 물가가 비싼 지역이면 식비와 생활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지원하기 전 교환학생 참가 수기와 파견 학교 홈페이지에 뜨는 기숙사 비용, 생활비 등을 잘 참고하셔서 부모님과 충분히 상의해보시고 교환학생 지원을 결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소위 말하는 등골 브레이커가 될 수도 있어요.. 


 - 아시다시피 막학기에는 무조건 명지대학교에 재학 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3학년 2학기 끝나고 지원하시는 분들은 휴학 신청을 하시고 교환학생을 지원하셔야 하고, 한 학기 파견 밖에 갈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강제 휴학이 되는 셈입니다 ^^; 


 - 이거 정말 운이 없을 때 일어나는 경우인데, 교환학생 선발에 합격되고 나서도 막상 파견 학교에서 학생을 받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국제 교류원에서 설득을 하지만 그래도 파견 학교에서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면, 차선책으로 갈 학교에 학생을 추가 파견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 때 그 학교에서 받아 준다면 정말 다행인 거고,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그랬어요 ㅠㅠ...)


 저는 1지망으로 지원했던 독일의 브레멘 대학교에 합격했는데, 위에서 말한 일로 인해서 미국의 애슐랜드 대학으로 파견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입학 허가서를 받고 미국 비자를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비자 인터뷰 후에 비자 준비 과정과 인터뷰 후기를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웬만하면 공개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질문은 비밀 댓글로 달아도 공개 답글로 달 수도 있습니다만, 당연히 익명 보장해 드립니다.)









종이에 담채, 58.0×818.0 cm, 간송미술관 소장

(http://kansong.org/collection/chokjandokwon/)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불행한 일생을 산 화가이다. 명문가 출신이었던 현재는 조부인 심익창(沈益昌, 1652-1725) 대에 이르러 집안이 급격히 기울어갔다. 심익창이 과거시험에서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 것이 발각되어 유배형에 처해지고, 유배에서 풀려나자 당시 왕세제였던 영조를 시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벼슬길은 당연히 막히고, 그저 숨죽여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던 심사정은 생계를 위해 그림에 매진하게 된다. 「촉잔도권」은 심사정이 말년에 그린 거작이다.


 촉잔도권이란 '촉으로 가는 험한 길'이라는 의미이다. 촉도는 중국의 관중(關中)에서 사천(泗川)으로 가는 길로서, 고단하고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촉잔도권」에서 드러난 낭떠러지들과 세찬 물길, 그리고 그런 길을 힘겹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불행한 심사정의 인생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험난함만을 담지는 않았다.


 "긴 화면에는 아찔한 산과 바위, 거센 강물이 반복적으로 펼쳐져 있지만 고통과 인내를 강요하는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다. 산세는 험하지만 물길이 숨통을 틔어 주고, 골골이 자리한 소박한 산촌은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고통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나 고난을 극복하려는 결의에 찬 모습이 아니다. 그저 쉬엄쉬엄, 그러나 겸손하고 정성스럽게 한 걸음씩 짚어 나가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처럼 보인다.


 격정적인 감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아우르는 유장함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거칠고 모진 붓질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는 오히려 차분하며 고즈넉하다. 특히 두루마리 마지막 부분의 평온함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은 후, 욕심을 덜어내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초탈한 노인의 뒷모습과 닮았다. 이 그림이 주는 진정한 감동과 의미는 작가가 일생토록 감내한 고통이나 분노가 아니라, 지나온 모든 것을 더듬는 담담한 관조와 따뜻한 아량이다."



참고문헌 및 발췌: 백인산, 『간송미술 36회화』, 컬처그라퍼, 2015, p.154-173. 









출처: 이연옥, 『한국 공공도서관 운동사』, 한국도서관협회, 2002.



1. 1945년 해방-1950년대 말: 도서관의 기반 조성에 주력하는 시기


 1) 일제로부터 도서관 인수 작업

 조선총독부도서관 인수는 해방 다음날인 8월 16일에 조선총독부에 남아있던 한국인 직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박봉석, 이선영, 강춘수 3인이 대표가 되어 이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 박봉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도서관수호문화수집위원회'를 조직하여 서울시내 각 도서관의 장서를 수집했고, 심지어 길거리에 뿌려진 포스터와 삐라까지 수집하였다.


 2) 한국도서관협회 결성

 도서관수호문화수집위원회는 보다 더 조직적이고 안전한 도서관 접수 활동을 하고, 해방을 맞은 도서관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의 도서관인들을 묶어내는 단체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1947년 4월 21일 조선도서관협회가 정식으로 출범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라 한국도서관협회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단체가 잠시 해산되었다가 전쟁 후인 1955년에 한국도서관협회가 재창립하게 된다.


 3) 전문사서 양성제도 확립

 도서관을 운영할 전문인력이 곳곳에서 요청되자, 1946년에 '국립조선도서관학교'라는 교명으로 사서를 양성하는 전문적 교육기관이 개교한다.


 4) 공공도서관 설립운동과 독서운동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건설 과정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문맹 탈피와 지식의 보급, 그리고 국민 계몽이었다. 도서관이 이것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인식한 도서관인들은 1개의 군에 1개의 도서관을 세우자는 '一郡一館' 운동을 시도하였고, 문맹 퇴치를 위한 '농어촌책보내기운동'과 같은 독서운동도 전개하였다.

 

 

2.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시기


 1) 도서관법 제정

 한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봉사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도서관 발전의 기본조건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도서관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 착수하였다. 여러 해동안의 끊임없는 문교부에의 건의와 노력 끝에 드디어 1963년에 도서관법이 제정되었다. 도서관법이 제정되는 것은 도서관 봉사 활동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국가에 의한 도서관정책 마련으로 인해 도서관문화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도서관법은 도서관 육성에 대한 국가의 시책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따라서 도서관법은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2) 전국도서관대회 개최

 도서관 문제를 논의하고 도서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도서관대회가 열렸는데, 1962년 처음으로 전국도서관대회가 개최되었다. 도서관인들은 도서관대회에서 사서직 정원 확보 및 처우 개선,  입관료 폐지, 도서관소속청 일원화문제 등의 문제를 논의하고 정부에 건의하기도 하였으나 정부의 반응은 미미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도서관대회마다 똑같은 건의를 되풀이하며 푸념을 늘어놓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3) 마을문고 운동

 마을문고운동은 공공도서관의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일어난 민간의 자발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독서를 통한 민중의 삶의 질 확보'라는 이념을 줄기로 하는 것으로 6,70년대 공공도서관 운동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다. 기존에 '농어촌책보내기운동'이 있었으나 그저 체계 없이 모아진 책들을 보내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성과도 미진하였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엄대섭은 농어촌에 책을 보내는 운동이 정규도서관을 축소한 개념에 따라 자율적인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63년에 이르러 마을문고운동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언론과 정부에서 마을문고운동을 후원하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을 통해 농촌의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을문고운동은 후원자가 끊겨 재정난에 휩싸이게 되었고 결국 마을문고본부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흡수되고 말았다. 이 운동의 침체요인으로는 공공도서관이 마을문고를 수용할 여력을 갖지 못해 공공도서관과 마을문고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이촌향도 현상, 국가와 사회의 참여와 지원이 지속되지 못한 것에 있었다.



3. 1980년대 초- 1990년대 초: 도서관 운동의 확대심화기


 1) 도서관법 개선을 위한 노력

 1963년 제정된 도서관법은 구체적인 보장이 없는 형식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었다. 그 동안 도서관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이러한 노력이 법 개정의 진전을 보인 것은 1986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김현자의원이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러고 나서부터 문교부가 도서관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다. 1987년 개정된 도서관법은 도서관의 육성 및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도서관발전위원회」와 「도서관진흥기금」을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도서관 발전 방안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도서관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편 국·공립도서관의 설치 의무를 강화하고, 공립도서관의 운영 재원을 지방자치단체의 '일반회계'로 명시했다. 또 관장직의 전문화가 개정된 도서관법에서 시사될 수 있었으며, 도서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각 도서관마다 운영 위원회를 두게 하는 등 공공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2) 도서관정책 소관부처 이관

 당시의 도서관인들은 우리나라 도서관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 행정 담당부서였던 문교부의 무관심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 선진국의 정부조직이 도서관업무는 출판업무와 인접해있고, 공공도서관은 사회교육적 기능 뿐만 아니라 정보전달 및 커뮤니케이션의 기관으로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논리를 들어 도서관 정책 소관부처를 교육부에서 문화공보부로 이관할 것을 촉구하였다. 별 성과가 없었으나, 1988년 문화부가 신설되면서 이러한 도서관인들의 주장은 보다 더 거세졌다. 하지만 이관 문제는 문교부와 문화부의 이권 다툼으로 더 복잡해졌고, 결국 도서관정책의 주관과 국립도서관 운영은 문화부에서 총괄하고, 교육청 소속 도서관은 교육청이 운영주체가 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의 문화부 이관을 주 내용으로 하는 「도서관진흥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문교부에서 관장하던 도서관 업무가 문화부로 이관하게 된다.


 3) 대한도서관연구회의 도서관운동

 - 개가 및 관외대출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학생들의 공부방 이미지가 강하였다. 이러한 이미지도 탈피하고, 이용자 입장이 아닌 사서 입장에서만 편리해지기 위해 폐가제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 중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를 위배하는 전근대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가 및 관외대출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 이동도서관 운동: 이 운동은 개가 및 관외대출운동과 마찬가지로 좌석과 건물 위주의 도서관체제에서 봉사와 자료 위주의 도서관체제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이동도서관은 도서관 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공간적 또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서관서비스 혜택을 제공하였다. 또 이 운동은 시민들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하였다.

 - 입관료폐지운동: 당시 50원 또는 100원 정도의 입관료 징수에 대한 규정은 1963년 기존 도서관법에 존재하였다. 이에 도서관인들은 '입관료를 받는 것은 공공도서관으로서의 본령을 이탈하는 것'이라며 입관료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입관료에 대한 규정은 점점 사라지고, 1992년부터는 도서관 무료이용이 현실화되었다. 


 4) 전국사서협회의 전문직운동

 당시 도서관계에서는 '사서는 우리 사회 지식자원의 원활한 공급과 접근을 책임지는 전문가집단으로서 자신이 처한 도서관현장의 개혁과 자신의 직업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주체로 나섬과 동시에 올바른 도서관문화의 정착과 보급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80년대 후반 격동의 사회를 거치면서 도서관이 사회발전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서였다. 전국사서협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서는 이제 막 현장에 들어간 청년사서들이었다. 열악한 도서관제도 속의 사서 개개인은 무력할 수 밖에 없었지만, 현장의 문제와 도서관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에 대한 개혁 의지가 고양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곧 침제되었는데, 조직력 확보와 대중성 획득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었다.


 5) 민간도서관운동

 - 지역주민도서실 운동: 노동운동, 문화운동, 지역주민운동 등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띤다. 또 사회경제적으로 어렵고 문화적으로 열악한 지역을 거점으로 도서실을 마련해서 책을 공유하고 다양한 문화활동을 형태로서 지역주민운동적 특징을 가지기도 하였다.

 - 작은도서관 운동: 여전히 공공도서관이 부족하여 도서관의 혜택이 지역 곳곳에 미치지 못하게 되자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고 형태의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게 되었다.



4. 1990년대 초 -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의한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


 1) 도서관 명칭변경 저지운동

 공공도서관장의 전문사서직 보임을 피해가기 위해 도서관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도서관'이라는 이름 대신 '평생학습관', '문예회관', '교육정보관' 등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도서관인들은 '공공도서관 수호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 도서관의 명칭변경 시도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이용자의 무관심이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2) 구조조정 및 민간위탁의 도전과 대응

 이 위기는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 흐름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정보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의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은 부당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 민간위탁의 부당성이나 구조조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항의서를 발송하는 활동 외에는 별다른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3) 창원과 경기 지역 사례

 - 창원지역에서는 지역사회 도서관환경의 열악함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주민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여 이들의 주체가 되어 도서관을 세워나가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 경기지역의 경우 사서들이 중심이 되어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 이를 통해 지역도서관 정책과 제도를 내어오는 운동이었다. 


 4) 2000년 6월 문화개혁시민연대는 "도서관이 도서관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서 구입비의 증액이 시급하다"며 도서관 자료의 확충을 요구하였다.